걸어도 걸어도
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민음사2017-10-10
십오 년 전 이날만은 이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때의 뜨거운 여름날, 바다를 찾은 장남 준페이는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목숨을 잃는다. 자연히 십오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매년 같은 날 준페이의 동생들인 료타와 지나미는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내려와 제사를 올린다. 이 가족에게 준페이의 기일은 설날보다 중요한 회합의 동인이 된다. 소설 속 오늘은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 준 요시오와, 결혼을 앞둔 료타의 예비 아내와 그녀의 아들 아쓰시, 지나미의 남편과 아이들까지 모두 찾아 준 덕분에 집이 꽤 북적이고 다복해 보인다. 그런데도 과연 어머니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형이 죽고 없는 시점에서 이미 가족이 모두 모인 적은 없었던 것인지, 적막하고 외로운 기운도 집 한 켠에 감돈다. 이 자리는 가장 커다란 공백으로 오히려 매년 가족의 회합을 가능하게 하는 장남의 존재감과 이제는 은퇴한 아버지의 실속 없는 위엄, 엄연한 독자(獨子)인 차남의 철부지 근성이 한데 모인 그야말로 역설의 현장이다. 다만 이토록 지독하고 소름이 돋는 서로이지만, 늘 그렇듯 전할 이야기가 떠오르면 꼭 한발 늦는 아스라한 동경과 영원한 그리움의 상대가 가족임을, 작품은 나직하게 들려준다.
유리문 안에서
저자 나쓰메 소세키민음사2016-12-02
나쓰메 소세키가 전업 작가로서 생활하며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서른아홉 편의 에세이를 엮은 책으로, 특별한 주제 없이 작가의 삶과 내면 풍경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 낸 이 작품에는 좀처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데에 늘 주저해 왔던 작가의 '진심'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그리고 우리 세계의 명암을 깊이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숙고하는 일 자체가 점차 사라져 가는 오늘날 고민과 공감의 힘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글을 권한다.